구두 수선공

● 구두 수선공

이슬라마바드 E7섹터의 시장 앞에서...	이슬라마바드 G6/1의 UBL빌딩 뒷 골목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청년

무더운 여름 날, 여느때와 다름 없이 카메라를 들고 바깥 산책을 나갔다. 사실 산책을 하기에는 너무나 더운 날씨여서 여유있게 즐거운 마음을 갖지는 못했다. 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잘 몰랐기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무심코 걸었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빼고는 한국과 별로 다를게 없는 경치들을 바라보며 조용한 거리를 배회하였다. 더운 낮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지, 아니면 주택가라서 그런지 별로 사람들이 눈에 뜨지 않았다.

미리 돌아 볼 곳을 알아보고 나오지 않아서 인지 무작정 가는 길은 볼 거리가 전혀 없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드는 피사체가 전혀 없었다. 조용한 거리, 건물들, 푸른 나무들도 내 기분처럼 더위에 지친 듯, 축 늘어져 보이고.... 때는 11시경... 상가단지 부근에도 사람들이 드문 드문 보일뿐, 상가들도 아직 열리지 않은 채 말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것이 없으면 태양을 향해 걸으라는 말대로 나는 한 낮의 태양을 향해 남쪽으로 걸었다. 길이 계속 남쪽으로 간다 싶다가 휘어져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는 길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 내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빈 택시 운전사들 뿐. 그러나 어디 갈 곳을 정해 놓지 않은 내게는 택시를 탈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래도 남쪽으로 가야해라는 굳은 신념으로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역시 골목에도 사람은 별로 없군. 골목길에 아이스크림 장사가 지나 간다. 큰 파라솔을 하고 아이스크림 통을 붙인 자전거를 슬슬 끌면서... 단조롭지만 흥겨운 노래를 틀면서... 내가 어릴 적에 한국에서도 아마 저런 것을 보았지.... 아마 저쪽이 막다른 곳인가 보다. 아마 옆으로 또 길이 있겠지. 집에서 나온지 한시간쯤 되었을까? 골목길이 끝나고 조금 넓은 길로 나오는 데에 가까이 오니 사람들이 보였다. 그 옆에 나무 그늘에서 앉아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나뭇가지에 무언가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고, 그 앞에는 무슨 연장들이 있는데... 아.... 구두 수선공이구나...

그 청년은 회색 굵은 나무 아래 신발깔창들을 매달아 놓고 연장들을 앞에 놓은 채 신발을 고치는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뒤쪽으로는 푸른 관목들이 단순하면서 깔끔한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나무 가지, 잎들 사이로 부분적으로 역광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서 아주 멋진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 사람들은 이방인인 나를 쳐다 본다. 무슨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헬로.. 헬로... 말은 거기까지만 통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아살라무알래꿈" "와알래꿈살람"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그냥 앉아서 손발짓으로 이야기를 했다. 영어를 하는 옆의 손님은 이 청년의 신발 고치는 솜씨가 아주 좋다고 했다. 그늘 속에서 안통하는 말을 주고 받으며 땀을 식히게 되었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어디서 왔냐, 무슨일을 하냐는 둥... 이때까지 대화는 역시 단순한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 다고 하니 옆에 있던 손님도 기념사진 찍듯이 뻣뻣하게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일을 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 청년은 얼굴이 앳되보였는데 일하는 모습을 찍겠다고 하니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구두를 다 고쳤지만 나를 위해서 연장을 잡고 일을 하는 척 해 주었다. 그의 눈빛은 이 무더운 날씨에도 지치지 않은 듯 했고 그저 맑은 하늘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전에 구름도 없는 하늘을 맑은 하늘이라기 보다는 무더운 하늘로만 생각했는데....

......

신발이 망가지면 그 친구에게 가 보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아직 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을 인화한 이후에도... 그곳까지 한시간 남짓 걸어야 하는데, 지금 같아서는 무작정 걷기가 싫어져서 인지... 사진을 꼭 전해주어야 겠다는 마음만 있지 가지 못했다. 내 구두가 망가지면 시간을 내서 꼭 그 친구를 찾아가 보리라.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기를 바라면서....